반찬의 든든함

매일같이는 아니지만 집에서 밥을 종종 해 먹는다. 요즘은 일을 쉬고 있기도 해서 혼자 간단히 점심을 해 먹는 횟수가 늘기도 했다.

냉장고에 재료나 남은 음식이 채워져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되도록이면 빨리 소진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한 번 반찬을 해서 저장해 두고 차려 먹는 게 아닌, 주로 한 끼에 적당한, 많아야 두 끼 분량의 요리를 해서 먹고 치우는 시스템으로 정착했다.

매번 뭔가를 해야 하니 귀찮기는 하지만, 어차피 매일 다른 게 먹고 싶기 일쑤고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을 꺼내 먹는 건 어쩐지 충분히 맛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또한 집에서 밥 먹기가 귀찮다는 말의 뜻은 차리는 일을 포함하니까, 괜히 반찬을 해 두기보다는 그날그날 해결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지난 추석 부모님 댁에 다녀온 이후 야심 차게 반찬을 만든 일이 있었다. 막내 고모가 집에 오시면서 직접 주말농장 농사를 지은 가지와 고추를 가져다 주셨고, 나도 조금 얻어 왔더랬다.




평소 같으면 가지는 껍질칼로 가늘게 썰어 파스타를 해 먹고, 고추는 요리 용으로 냉동해 두었을텐데. 그때는 추석 다음 날 엄마가 차려 주셨던 가지무침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였는지 나도 갑자기 반찬이 하고 싶었다. 추석 전에 샀다가 명절이 껴서 다 못 먹은 오이도 있겠다, 팔을 걷어 부쳤다(라고 하기엔 고작 반찬 두 개에 그것도 쪼오금씩ㅋㅋ).






가지는 찌고, 오이는 소금에 절이고-






식혀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가지는 들기름과 간장, 다진 마늘, 올리고당을 넣어 휘휘 볶았다. 간을 보고 약간 허전해서 청양고추를 쫑쫑 썰어 흩뿌렸더니 비주얼과 맛이 완성되었다.

소금을 머금은 오이에서 나온 물을 조금 따라 버리고, 양파, 깻잎(이것도 명절 전에 사 먹고 몇 장 남아 있었다), 청양고추, 고춧가루, 간장, 다진마늘, 설탕과 멸치액젓 약간을 넣고 버무렸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깨를 넣어 마무리.




다른 음식 없이 두 가지 반찬에 밥 한 공기를 먹는데 혼자 먹기 아쉬울 정도로 꿀맛이었다. ㅎㅎ






부드럽고 달착지근하면서도 들기름 향이 솔솔 배어 나오는 가지볶음과, 고추+양파+고춧가루 매콤 콤보를 입었지만 아삭함을 잃지 않은 짭조름한 오이김치의 하모니.




한 끼 분량이 아니라서 남은 걸 반찬통에 담는데, 이날따라 남은 반찬이 왜 그리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아, 이 맛있는 반찬을 내일 또 먹을 수 있네?’ 했다.

이제부턴 가끔씩 반찬 시스템을 도입해도 좋겠다. 단, 맛있게 만들 것. 










덧글

  • 쩜오주홍양파 2019/09/25 21:57 # 답글

    오 이렇게 채소로만 된 반찬 너무 좋아요 잘 보고 갑니다~
  • seine 2019/09/26 01:03 #

    이렇게 해 먹으니 더부룩함 없어서 좋더라고요 ㅎ 고맙습니다~
  • 헬로키티 2019/09/26 15:03 # 답글

    몸에좋은음식 ㅋㅋㅋ
  • seine 2019/09/27 01:28 #

    맛있으면 정신건강에도 좋겠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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