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짧은 글짓기 결산 ⑤


2014/ 5월부터 2015/ 4월까지 짧은 글짓기 모음입니다. '미투데이'라는 서비스를 쓸 땐 꾸준히 써 오던게 올해 들어 뜸해졌네요. 몇 년간 지속했던 습관인데 아쉬워, 다시 해보려고 결산합니다.



2014/5/20

이제는 이 단어를 마냥 감상적으로 말하거나 받아들이기가 점점 어려워지나 보다. 뭐랄까, 진짜로 잠을 자다 꾼 꿈 이야기를 할 때 외에는 그 단어를 말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본다. 우리가 말로 만든 문장 사이의 표정에서 난 오히려 훨씬 자세히 그걸 보고 만다.
[꼭두새벽의 짧은 글짓기: 꿈②]



기록한다. 그럼 나중에 다시 펼쳐 이거 보라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질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끽해야 나 살으라고 있는 내 삶이니 뭐라고 한들. 자랑하면 웃어 줄 친구와 일기장만 안 잃어버리면 살 순 있을 것 같다. 이 흔적이 단지 바람이었더라도 거짓은 아니었다고.
[꼭두새벽의 짧은 글짓기: 꿈①]



2014/6/24

우리는 아주 다르지만, 거의 다르지만, 어딘가 한 구석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체는 안 했어도 그런 구석이 나는 기쁘니까. 그런 건 인사만 나누어도 알 수 있거든요. 처음엔 미처 몰랐대도 꽤 긴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악수를 나누던 날을 굳이 떠올리는 거예요.
아, 그때부터였구나- 라고.
[야밤의 짧은 글짓기: 인사]



2014/5/20

훗날 내가 가진 것 중 무얼 버리게 될까 궁금하다. 예전의 내가 뭘 버려서 오늘이 된 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지금 내가 뭐 가진게 있긴 한 지도 잘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버리기 싫단 맘 하난 확실히 버린 것 같고, 해 뜨는 걸 보니 불면증 하난 제대로 가진 것 같다.
[꼭두새벽의 짧은 글짓기: 해]



2014/7/14

언어의 결정이라고 보면 되겠다, 시는. 간장 종지에 간장이 남은 채 며칠을 두면 액체가 다 증발해 말라 붙은 가운데 남는
네모난 소금 결정과 같이. 그러니까 그것은 한 인간이 지어 내는 말과 몸짓들이 아니라 그 사람이 모두 밑바닥까지 증발했을 때 바닥에 비로소 형체를 드러낸 결정과 같은 것.
[짧은 글짓기: 결정]



모르는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말로 모르는 사람과, 모르기로 한 사람.
모르는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정말로 모르는 일과, 알려고 하지 않는 일.
[메모]



2014/8/10

삶이 이렇다 알았으면 붙잡을 이유는 없었을 거요.
이런 줄 몰랐으니 살아왔고 앞으로도 알 도리가 없으니 살아가는 거겠지.
남은 시간은 아직 포장을 풀지 않은 선물꾸러미들처럼 놓여 있소.
어느 때엔 기쁨에 취해 기꺼운 마음으로 리본을 풀겠지만
바란 적 없고 과분한 그 선물들을 삶에 끼워 넣는 건
다시 살아 낸 내 몫의 과업으로 돌아오겠지.
매일 밤 불을 끄고 눈을 감는 일은 또
열어버린 시간을 어둠 속에 재우는 의식이 아니겠소.
[야밤의 짧은 글짓기: 선물]



2014/8/23

새벽기운이 방에 스밀 때면 열어 둔 창문 좁은 틈으로 오늘 자야 하는 자욱한 잠이 조금씩 조금씩 달아나는게 보여. 일어나 붙잡고 싶지만 몸은 움직이지를 않고 아린 두 눈만 그저 허공을 쫓는다. 끝내 뱉어버린 바보같은 말 그 옆에 가 한참을 새기다가, 대답도 아니 오는 먼발치를 헤매다 또 한참을 앉았다가. 달아난 네 녀석은 어디로 가는지, 가다가 어느 창가에서 자장가가 들리거든 그곳에라도 머물러 다오. 그대로 내일 해를 만나기에는 너무 고단한 오늘을 보낸 사람들이니
[야밤의 짧은 글짓기: 자장가]



2014/11/5

허무함을 느껴버린 건 지식도, 지혜도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열지 않기도 하는 문을 연 것 뿐. 다시 닫을 수도 그런 문이 있다는 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걸 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싶기도 해. 잊은 줄 알았을 때, 다른 문인 줄 알았을 때, 열었는데 또 만나게 되는게 그래서 무서워. 얼굴을 가린 손가락 틈으로 보고 마는게 두려워.
[야밤의 짧은 글짓기: 틈]



2014/11/13

모두 생의 가운데 홀로 갇혀 싸우는데 아무도 서로를 안아줄 수 없다는 사실이 M은 괴롭다고 했다. 그리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와 삶의 언저리에 서 있자니 자신을 버티게 해 온 유일한 이가 이제는 멀찍이 서서 팔짱을 끼고 조소하는 기분이 들더라는 것이다.
[대낮의 짧은 글짓기: 생]



2014/12/17

M은 십수 년 전 어느 가을날 자기와 꼭 같은 얼굴을 가진 악마와의 거래를 문득 떠올렸다. 놈이 쥐어준 건 비밀 하나를 단단히 가둘 수 있는 자물쇠였고, 그것의 열쇠를 평생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꼭두새벽의 짧은 글짓기: 거래]




짧은 글짓기 결산 ①: 2010/ 5월 - 2011/ 4월

짧은 글짓기 결산 ②: 2011/ 5월 - 2012/ 4월

짧은 글짓기 결산 ③: 2012/ 5월 - 2013/ 4월

짧은 글짓기 결산 ④: 2013/ 5월 - 2014/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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